0204, 00:31 ~ 01:32
스코프 너머로 밀어닥친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흐트러진 대열의 균열 마다에서 감탄과 찬사가 터져나왔다. 잊힌 대지 위에 뿌리 내린 녹수가 창천 아래 싱그럽게 빛을 머금는다. 부드럽고 윤습한 향토를 감히 검게 더럽혀진 군홧발로 내딛는다. 무수하게 줄지은 흑색의 군집이, 청록빛 등딱지가 반질거리는 소형 비행체들이, 선홍색으로 유연한 선형 개체가, 오래 전 잃어버린 색채들로 물든 날개의 무리가. 일제히 날아오르며 기어다니고 불그스런 흙을 파헤치는 모든 행위들 에 그저 경탄만을 입에 올린다. 버림받은 우리들의 망향은 이렇듯 회생하여 이곳에 재림한다.
누군가 비로소 방독면을 풀어 내렸을 때, 마른 가지에 옮겨 붙는 불길처럼 일제히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억제한 것들을 모조리 벗어 던진 뒤에. 우리는 비강을 어루며 폐부 깊이 스미는 찬란을 실감한다, 생동하는 빛살이 살결을 쓸어내고 머리카락을 흩어놓는 경희를 체감한다. 우리는 새로 태어날 것이다, 추레하기 짝이 없는 낡은 껍데기로부터 탈피해 광활한 지상에 몰아치는 폭풍이 될 것이다. 색이라곤 서로의 눈동자에 담긴 그림자의 윤곽 뿐이었던 우리는 묵철과 질병의 시대에서 벗어나 고결한 정신으로 거듭날 것이다. 경외와 예언이 교차하는 시선의 틈으로 신실한 숨결이 스민다. 오색으로 물결치는 구천은 죄를 짊어지고 이어온 우리에게 내려진 면죄다. 지워지지 않을 혈육의 비탄과 압제에 대한 구제다.
형용할 수 없으나 녹음이 끊이지 않는 지평 너머에서 우짖는 소리들이 있다. 그 고아함이란 사이렌의 새된 기계음에 비할 수 없으며 붉게 점멸하는 경조등도 이제 없다. 이를 악물어 견뎌야할 두려움 또한 없다. 겹겹이 둘러싼 회벽과 철골의 장벽에 갇혀 어제의 그늘을 입에 욱여넣지 않아도 된다. 이로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분명 우리는 용서받은 것이리라.
아주 먼 과거에 두고 온 환희의 둔덕이 바로 이 앞에 있다. 넘어지고 엎어지며 헤매였던 태초로 회귀할 적시가 이렇게 도래한다. 선택받은 이들에게 축복과 영광이 함께하라, 참고 견디어낸 선한 자들에게 존귀와 영생이 깃들게 하라. 우리의 참된 구원께서는 필시 이날까지의 모든 것을 굽어 살피어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보응하심에 거짓과 무마는 없을지니.
이윽고 우리는 깨닫는다. 천칭에 오르기까지 흘려낸 피와 비명들이 저울판을 넘쳐 흐른다. 지글거리는 몸뚱이가 벌겋게 들끓으며 피고름으로 낭자하다. 섬짓하리만치 선명하게 푸르른 이파리들이 죄인들을 뒤덮는다, 아,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은 무엇을 연유하며 풍요로워가는가, 터져 나오지 못한 외마디는 그대로 부패하며 토지의 윤택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