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6, 23:00 - 23:30

페페이 2019. 9. 26. 23:30

 


  말하고자 한다면 입에 올릴 수 있었던 문장은 많았으리라. 오늘 있었던 일, 요즘 사는 세상, 언젠가에 대한 근황, 하다못해 날씨와 흘려들은 텔레비전 너머의 소음들, 중얼임, 골목 언저리에서 놓치고만 길고양이의 긴 꼬리라거나,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잎들, 철지난 가요와 어디가나 똑같은 음악들, 웬일로 부대끼지 않았던 출근 버스, 운 좋게 오븐이 열리는 시간에 지나갔던 빵집 옆길, 가로수 아래에서 주운 100원짜리 동전과 같은, 그런 것들. 그래, 당신과는 상관없는 것들. 흔해 빠진 고백을 주워 삼키지 못해 흔해 빠진 이야기들을 주절거렸다. 소리들은 모두 마주앉은 상대에게 향했으나 서로가 여백이 되는 대화들은 그저 무난하고 평행하게 이어진다. 대화의 연장선, 당신과 나는 이렇게 딱 커피 두 잔이 놓일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쭉 닿지 못하고 흘러갈 것이다.
  오늘도 재밌었어, 또 보자, 빈 잔에는 함께한 시간만큼의 온기가 남는다. 거리에는 불이 밝기 시작하고 나는 당신의 체온보다 조금 낮은 머그잔을 매만지다 트레이 위에 올려둔다. 나는 아마도 평생 당신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을 테다. 그저 이렇게 계절이 변할 즈음에, 혹은 갑작스레 갈 곳을 잃었을 때, 까닭 없이 사무치게 외로워질 때. 잊지 않았지만 깨닫듯 서로를 떠올리며 익숙하게 무릎을 마주하고 이마를 맞대겠지. 부르는 쪽은 언제나 당신이고 기다리는 쪽은 언제나 나다. 나는 겁이 많고 당신은 새로운 사랑이 목마르다. 우리는 변함없이 함께하지 못한다. 머무른 시간들만이 넘친 커피 자국처럼 아차, 돌이키고 나자 어영부영 선명해진다. 당신과 스쳐지나간 여섯 번째 가을이 진다. 통상의 붉은 잎 따위 한 끝조차 보지 못했으나 당신의 열 오른 낯은 헤아릴 수 없이 보았으니 되었다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