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 23:00 - 23:30
발판을 잃은 자의 말로는 추락 뿐이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쓰렸다. 휘몰아치며 유약하기 그지 없는 몸에 발톱을 세운다. 얼핏 종결 외엔 남지 않은 이를 힐난하는 것 같다. 차갑게 얼어붙어가는 뺨을 억지로 움직여 입꼬리를 끌어낸다. 실소, 또는 자조. 비명과 같은 울림이 귓가에 맴논다. 결국 울음이 섞이자 점차로 어두워지던 하늘에 뇌운이 번쩍이기 시작한다. 단 하나를 위한 슬픔은 메마른 대지에 단비처럼 스며 만인의 기쁨이 될 것이다. 단 하나를 쥐기 위해 속도를 더하기 시작한 돌풍은 이 땅의 부정한 것들과 함께 만인의 고통을 쓸어낼 것이다. 짙게 깔리기 시작한 어둠 너머로 희미하게 동이 튼다. 그럼에도 선명하게 눈가에 닿는 빛살이 시려 감아버린다. 생각보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다. 그저 아직 지상까지는 얼마나 더 남았나, 그렇다고 고개를 들어 살필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지평의 끝에 종지부처럼 굳건하게 선 탑을 오르는 것, 그리고 꼭대기의 종을 울리는 것, 새로운 시대를 고하며 무너지는 과거의 축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 해야할 일은 이 세 가지였고 묵묵한 수행인에게 겨우 한 줌 남은 용기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데에 모두 써 버린 탓이다. 수풀처럼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외투 사이로 미련이 어룽진다. 과거는 붙잡을 수 없는 법이다. 한 때 용사라 불렸던 자는 이제 영광스러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며 그와 곁을 함께한 자들은 그를 등지고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네가 해야할 일은 그 하나다, 나의 오랜 벗. 그러니 이제 그만 마지막 인사를 하자. 뒤집힌 세계에게 안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