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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23:00 - 23:38

페페이 2019. 4. 17. 23:41



  침대 맡의 이야기는 언제나 정겹고 친절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이야기의 끝을 이렇게 매듭지었다.

  “이웃들에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단다.”

  반드시 명심하렴, 염려 깊은 목소리는 곧 제 떨림을 감추기 위해 아이의 이마에 입맞췄다. 아이는 익숙히 그의 뺨에 입맞추곤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아버지는 엷고 가느다란 머리칼을 쓸어내며 아이의 곁을 지켰다. 짙은 녹빛으로 물들인 결에서 희미하게 약초 내음이 묻어난다. 닿는 손길에 나긋해지다 어느새 잠이 든 얼굴이란 평온하기 그지없다. 젖살 올라 도톰하고 보드라운 언저리를 가만 매만지자 잠결에 고개를 기대온다. 그러다 문득 갓 태어났을 즈음의 아이를 떠올린다. 황금으로 자아낸 실과 같은, 한낮을 빗겨난 늦은 오후의 온기를 머금은 색, 추수를 앞둔 너른 밀밭의 풍요로움을 닮은 금빛의 머리카락. 요정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그것은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그들이 농도 짙은 사랑이란 집착이었으며 소유욕을 동반했다.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갈 뻔하는 것을 간신히 참아낸다. 두 번은 없으리라. 협탁 위에 놓았던 촛불이 제풀에 사그라들 때까지도, 아버지는 아이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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