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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01:30 - 02:00

페페이 2019. 4. 20. 02:03

 

 

  노인은 이따금씩 펜을 들었다. 대부분 저녁 식사 후의 다과 시간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창 밖의 하늘은 짙은 보라색이었고, 가지런히 묶인 커튼 자락이 바람에 한들거렸다. 창문을 마주한 책상 앞에 앉은 노인의 단정한 머리카락도 얕게 흔들렸다. 그는 정갈한 자세로 서랍에서 몇 장의 종이와 만년필, 그리고 양초와 도구 몇가지를 꺼낸다. 집 안의 양초는 모두 노인을 닮은 흰색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조금 특별한 양초를 사용했다. 어두운 녹색인데다 양초라곤 했지만 심지도 없었다. 잠시간의 고민을 거쳐 써내려간 편지들을 봉투를 담은 뒤에 사용하는 것이라했다. 이젠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넉살좋은 우체국 직원이 아이에게 속삭였으나 그의 방식은 한결같았다. 사실 아이도 그 특이한 편지가 싫지는 않았다. 녹색의 양초가 녹아가는 것이나, 평소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와는 다른 유려한 글씨가 흐르듯 쓰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꽤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체국을 가는 것도 제법 괜찮았다. 많은 사람만큼 여러 형태의 소포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가장 재미있는 건 우표 붙이기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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