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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리 빤히 보는 게요. 툭 쏘아 붙이는 듯한 소리에 노인은 뒤늦게 그와 눈을 맞췄다. 말투와 달리 숲을 닮은 녹빛의 눈은 항상처럼 담담하게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비록 그의 미간 사이에는 주름이 깊고 입술은 새처럼 비죽이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가 그렇게까지 불쾌해 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았다.
벌써 마주한 지 보름에 가깝다. 이 낯선 자는 어김없이 달이 뜨기 전에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나선 한껏 못마땅한 얼굴로 노인이 갓 피워낸 모닥불을 삐딱하게 바라보다가 말없이 한숨을 내쉬곤 그 앞에 앉아 불을 쬐는 것이다. 달이 그들의 머리 위에 오를 때까지. 노인은 그를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닌지라 그가 나타나면 본래보다 세 배는 더 과묵해졌다. 그 또한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닌지 대체로 말을 아꼈으나, 말문을 여는 것은 언제나 그였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그는 변함없이 불성실한 태도로 말을 걸었고 노인은 적당한 말을 고르느라 몇 분 동안 수염만 쓸어내렸다. 그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숲에 잔바람이 떠돌다 사라졌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노인은 조금 더 침묵하다 본래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곳으로 눈을 옮겼다. 그의 머리 위로 돋아난 마디마다에 그림자가 얽히고 풀어지기를 반복하며 그리는 무늬가 괴이하면서도 일면으로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형태는 숱하게 봐온 동물의 것보단 오래된 나무의 그것에 더 가깝다. 유려하지만 강인하고 충만한 곡면을 찬찬히 살피다가, 노인은 느즈막히 입을 연다.
“자네 머리 위의 그것도 사슴처럼 갈이를 할지 생각했다네.”
사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머리에 녹각처럼 뻗어나 있는 가지 뿐만이 아닌 탓이다. 노인의 시선은 점점 아래로 향한다. 그는 항상 짙은 녹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어 목 아래의 생김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의 얼굴과 눈을 가진 채 미워할 수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거는 그의 하반신이 분명한 사슴의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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