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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23:00 - 23:30

페페이 2019. 9. 24. 23:33

 

 

  너머에서 저녁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풀섶을 가로지르고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어지럽게 뒤엉킨 나무그늘을 해치고 노을을 등진 새들이 시커멓게 떼 지어 날아올랐다. 덤불 열매와 키 낮은 잎새 따위로 얼룩덜룩해진 흰 옷의 아이들은 몰려오는 밤을 술래 삼아 교회까지 내달렸다. 왁자한 외침들이 마른 가지 마다에 웅성이며 을씨년스레 일렁였다. 지척까지 드리운 그림자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며 경주는 이어졌다. 검은 숲과 사랑의 집 사이에 놓인 흰 울타리가 경계였다. 도착한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저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며 소리를 높였지만 누구도 그늘 끝에 서 있던 마지막 아이를 찾지 않았다. 이 어린 양들의 안전을 위해 방울을 달아둔 끈만이 붉게 흔들리며 석양에 작별을 고한다.
  제법 서늘해진 바람에 촛불이 흩어지며 그을음을 뱉는다. 빗장을 걸어 잠그던 수녀는 한숨처럼 길게 늘어지는 모양새가 불온하다는 생각을 했다. 스러질 듯 굽이치며 부옇게 시야를 흐려오는 연기가 마치 뱀과 같다. 점차로 고리의 형태를 갖추며 이마 언저리에 내려앉는 두통이 가시관을 모방한다. 아득한 문 너머로 길가의 억새들이 이지러지며 파도처럼 몰아치는 소리를 듣는다. 간간히 바람에 뒤성기며 방울쇠가 안을 긁는 소리가 꼭 아이 울음처럼 들렸다. 너무 무리한 모양이라며 관자놀이를 짚던 차에 수녀님, 저 왔어요, 영영 길 위를 방황해야할 작은 저주가 신의 사랑으로 가득 찬 성소의 문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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