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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23:00 - 23:30

페페이 2019. 10. 8. 23:31

 


   째깍이는 초침이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을 밝히기 위한 밑재료는 모두 준비되어 있다. 거미줄처럼 곳곳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흔적들을 끌어내 짜맞추기만 하면 완성되는 맥락이 곧 진실이다. 숨을 가다듬는 사람, 손톱을 물어 뜯는 사람, 발을 구르는 사람, 이죽이며 흥얼이는 사람, 눈물이 멈추지 않는 사람, 침묵하며 방관하는 사람. 각자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 어긋난 말들은 서로의 모순을 꼬집는다. 의심과 흥분은 훌륭한 아군이다. 훼손된 단서는 그마저도 위조되었지만 그 흔적조차 실마리로 빛나며 가려진 대상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주어진 것들은 사리를 밝히는 데에 충분할 정도였다. 오히려 과도함을 경계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모자람없이 풍족한 지혜, 자만으로의 지름길. 어디서 잘못되었지? 거미의 덫을 복원해내자 어째선지 그대로 그것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밀고 있었다. 가엾은 헨젤, 과자 부스러기를 쫓고 있었니? 그럴 리 없다. 시나리오는 완벽했다. 헛기침하는 소리, 흘겨보는 눈동자, 있을 리 없는 피내음. 현기증이 이는 듯 했다. 카페트의 무늬가 소용돌이치며 발 아래를 집어 삼킨다, 그런 착각. 짧게 휘청이자 짚어낸 협탁이 달그락이며 흔들린다. 얹고 있던 화병이 넘어진다. 붉게 피다만 한 송이, 볼품 없이 나뒹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물자국이 번지기 시작한다. 분명 실수는 없었을 텐데. 범인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사라진 시체는 어디에 고개를 뉘였는가? 딱 그 두 가지를 상실한 정황이 신기루처럼 선명하다. 한숨처럼 비웃는 사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사람, 발을 구르며 웃는 사람, 여전히 이죽이며 비웃는 사람, 눈물이 날 정도로 비웃는 사람, 힐긋이며 비웃는 사람, 비웃는 사람, 비웃는 사람들― 암전.

  카페트를 붉게 물들이는 시체들, 사라진 흉기와 범인, 적막한 밀실. 곧 문이 열리고 새로운 인물들이 비린내 가득한 좁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사건은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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