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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23:00 - 23:30

페페이 2019. 10. 10. 23:32

 

 

 

  말 그대로 숨이 막힐 것 같아 등을 두드리자 선배는 그제야 힘을 풀었다. 그의 채도 낮은 모래색 머리칼이 내 안경에 엉킨 탓에 미안해, 실례 좀 할게요, 그런 열없는 말들만 속삭임처럼 오고갔다. 마디를 세우며 설긴 매듭을 푸느라 꼼지락이는 투박한 손가락들을 본다. 그는 분명 겉보기와 달리 섬세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만큼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아 쉽게 당황하고 헛손질을 했다, 지금처럼. 몇 번이고 미끄러지는 손 끝. 머쓱해진 그가 무심코 습관처럼 머리카락을 넘기자 단단히 끼인 가닥 몇 개가 투둑 끊어진다. 얕은 한숨이 샌다. 그늘 짙은 그의 얼굴이 염려 깊은 두 눈에 눈부처를 새긴다. 선배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어 내가 할게요, 우리 사이의 이 별 것 아닌 매듭을 풀어낸다. 이렇게나 간단한 일에 뭘 그리 쩔쩔맸냐는 양 올려보자 슬그머니 뺨을 붉히며 아랫 입술을 잘근이는 그가 있다. 불안한 사람처럼 거칠게 뜬 표피를 물어 뜯으면서도 제 앞의 이가 마냥 그립고 반가워 누그러진 낯을 하는 그. 지긋이 입가에 눈을 두자 그제야 뒤늦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척 입을 모으는 것마저도 여전했다. 어쩔 수 없어 또 다시 한숨이다. 비뚤어진 안경 너머로 한껏 불편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까딱, 가볍게 손짓하자 선배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인다. 하필 만나도 굽 없는 걸 신었을 때 맞닥뜨릴 건 뭐람. 아무래도 좋을 불평을 속으로 삼키며 뒷꿈치를 들어낸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서로에게 인사조차 건내지 못한 입술들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은 찰나다. 하지만 다시 맞붙어오는 것도 순식간이며. 자연스레 허리를 끌어 당겨 안는 그가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어 짧게 혀를 차자, 벌어진 입새를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열기가 있다. 간간히 부딪히는 서로의 안경이 걸리적거리지만 딱 이 정도가 좋다고 여기며 눈을 감는다. 선배와의 키스는 그리 길지 않다. 이건 단지 사적인 대화가 준비되었다는 우리만의 합의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도 잊을 만큼 해야할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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