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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들은 21번지에 있는 세번째 집을 '인형의 집' 이라고 불렀다. 집 주변을 둘러선 키작은 붉은 벽돌담 뒤로 쇠 푸른 덩굴무늬 철창이 고상하게 솟은 집이었다. 할머니 엠마는 철창 끝에 예리하게 봉우리 진 조각이 백합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 아래 유연하게 얽힌 잎새 덤불은 엉겅퀴와 담쟁이일 것이라고, 금요일 저녁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마다 안경을 밀어올리며 장담했다. 아이들은 21번지를 지날 때마다 나뭇가지를 들어 악기를 연주하듯 창살 위를 두드리곤 했다. 다른 밋밋한 울타리보다 다양하고 우스운 소리가 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이 점잖고 우스꽝스럽게 화려하지 않은 장식보다도, 중간에 아치 모양으로 구부러지는 부분이 좋았다. 정점에 올라 가 있는 고양이 장식이 기지개를 펴고 있는 탓도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문고리 근처로 내려와있는 황금색의 가느다란 사슬이다. 꼭 말하는 인형의 등에 달린 끈처럼 동그란 고리가 달린 이 줄을 당기면, 엠마가 좋아하는 흑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오래된 노래와 함께 발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조금만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면 울타리 너머로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꼬마애는 분명 성격이 급하고 멋대로 모래밭을 헤집는 무례하고 멍청한 애일 것이다. 나는 참을성 있고 초인종의 곡이 끝날 때까지 휘파람으로 따라 불 수 있는 멋들어진 아이니까. 줄을 당기고 구두 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들기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다. 대개 열에서 열 넷 정도에는 인형의 집에 사는 주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열 하나, 열 둘, 열 셋… 어서오려무나, 골디. 오늘은 선생님께서 무슨 숙제를 내주셨니? 수학? 문법? 조금은 느리지만 상냥한 목소리가 허리를 굽히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벤자민 험버트, 이 작고 아담하며 깨끗하게 정돈된 집의 주인이라기엔 곰에 가깝게 생긴 이 사람을 나는 큰 곰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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