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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시야. 호흡의 작은 떨림조차 이명으로 번지기 시작한다. 마른 밭에 번지는 잔불처럼 삽시간에 공기를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진다. 발 아래에서부터 준동하며 머리맡까지 기어올라 갉작이는 소음. 찰나를 영원 같이 조여내던 그것은 공간을 밝히는 빛과 함께 멎어든다. 천장과 바닥, 벽 모두 동일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작은 큐브를 닮았다. 바닥 면에 손을 뻗으니 매끄럽고 부드럽지만 단단한 표면 아래에서 엷은 온기가 느껴졌다. 불투명한 재질은 아크릴같으면서도 달랐고 그 너머에 빼곡히 조명을 설치한 모양이었다. 귀를 기울이자 희미하게 기계 작동음이 들렸다. 아마도 열기를 식히기 위한 냉각장치가 아닐까. 어쩌면 다른 장치가 있을 지도. 확실한 것 하나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분명한 한가지는, 출입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반듯하게 직각으로 세워진 하얀 공간은 작은 어그러짐 하나 없이 빛으로 맞물렸다. 희미하게 표면을 가로지는 열두 개의 모서리만이 간신히 공간의 형태를 정의했다. 관절 마디와 말단부를 뻣뻣하게 짓누르는 체중이 없었더라면 광채 속에서 깨어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곳에서 정신을 차린 이유는 무엇이지? 뒤늦게 깨달으며 몸을 더듬으니 손목에서 이질적인 물체를 발견한다. 금속제 고리와 같지만 표면을 따라 새겨진 흑백 패턴.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이 비쳤다. 그때였다, 한쪽 벽면이 열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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