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하자 숲은 금새 어스름으로 가득 찼다. 윤곽만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짙은 숲의 어둠 너머로 그것의 푸른 눈만이 선연하다, 그러나 고요했으며. 또한 어째선지 초연한 눈을 가진 그것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아주 느리게, 실을 잣듯 제 위로 드리워진 나무 그늘 한 귀퉁이를 잡아내더니 후드처럼 푹 덮어내는 것이다. “이 이상 머물러봐야 댁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거요.” 그러니 날이 밝으면 돌아가쇼. 그것의 목소리가 나뭇가지 사이들을 배회하다 바람이 되어 흩어진다. 멀어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선잠에 들어 꿈을 꾸었다 여기기엔 지나치게 또렷했으며 솔직한 목소리였다. 귀찮게 굴지 말라는 듯한. 아지랑이마냥 일렁이던 엷은 주홍빛마저 가시고 온전한 밤이 내려앉은 뒤에야 노기사..
방아쇠를 당겨 장전된 총알을 쏘아내기까지 앞으로 아주 조금이었다. 여왕은 노기사에게 3개월이라는 시간과 이 허무맹랑한 임무를 포기할 수 있는 자비를 함께 내렸지만, 노기사는 불충을 입에 올리며 포기 대신 2개월의 시간을 추가로 받아냈다. 그 시간마저 이미 절반이나 낭비하여 시간은 이미 새로운 달에 접어들고 있었다. 일말의 조바심조차 나지 않는다면 거짓이었을 테지만 그는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에 익숙했다. 검지 손가락 하나만 까딱, 한다면. 분명 그가 맡은 일이 마무리될 터였다. 오랫동안 하나의 주인만을 섬겨온 그에게 있어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며 그에 대한 반문과 의심이란 결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남쪽 숲에 살고 있다는 영악한 짐승을 처치하게. 꼭 잠들기 전 아이들을 위해 펼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