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밀려온다. 오셨어요, 귓가에 재잘이는 소리란 한없이 상냥하다. 머금은 웃음은 여명처럼 희다. 품 안 가득 차올라 스미는 온기를 끌어 안는다. 눈을 감는다, 수면에 비친 노을빛에 눈이 부신 탓이다. 지평선 너머의 머나먼 푸른 땅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온 그 곁에선 낯선 향이 났다. 짙은 푸르름이다. 뿌리가 얽힌 단단한 땅과 그 위로 높게 솟아난 숲을 연상시키는 맑은 내음. 분명 산과 들 위를 흐르며 한껏 생기로워졌을테지. 여리고 윤이 나는 살갗에 얼굴을 묻고 나는 알지 못하는 어떤 과거를 그려본다. 꼭 망아지같군요, 연하게 일렁이며 머리칼을 흩어놓는다. 어딘가 장난스러웠으나 정말로 그렇게 대하듯 살뜰하기 그지없는 쓰다듬에, 결국 웃어버리며 고개를 들고 물결을 마주한다. 다녀왔어요, 라거나 보고싶었어요..
눈이 멎자 대열을 정비한 병사들이 다시 숲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리 내린 공기는 들이마시기 버거웠고 그간의 눈이 두텁게 얼어붙은 땅은 한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잡아먹었다. 흔적을 지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피부 깊이 스미는 한기에 아득해져가는 머리를 애써 털어낸다. 길목마다 놓아둔 덫과 함정들은 모두 확인했다. 체취를 지우고 채비된 길로 유인하는 것은 언제나 같다. 어중간하게 머물다 스러진 눈보라로 정확한 인원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 자신이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웅성이는 소리들에서 대략의 무리를 읽는다. 길이 잘 든 사냥개 몇 마리와, 검을 든 소수, 대부분은 활을 들었으며. 화약내를 맡는다. 불온하게 일렁이던 우는 자들이 한순간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직감한다. 그들은..
회백색의 숲은 그림자마저 눈 아래 묻힌 듯 했다. 몇몇의 상록수들은 저들의 이름만큼 짙푸른 그늘을 드리우며 침묵했다. 이맘때의 주민들이 그렇듯 흰 잠에 빠진 숲 속을 맴도는 이는 이른 밤과 눈감지 못하는 추위 뿐이다. 장난기 많은 작은 이웃들도 결국 같은 주민들이기에. 홀로 깨인 사람의 아이는 언 손을 맞쥔 채 적막에 귀기울였다. 제 마른 숨과 앙상한 바람만이 희게 맺히다 흩어진다. 두려울 정도의 괴괴함이 늪처럼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귓가에 웅성이는 뒤척임은 어제의 두 배 가까이 불어났으나 산 자의 것은 아니었다. 숲의 그림자를 대신해 가지 밑에 모여든 검은 형체들은 하나같이 숨을 죽인 채 그를 바라본다. 크거나 작고 늙거나 어렸으며 마르거나 뚱뚱하기도 한 오래된 여자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울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