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본명은 페르닉스라는 이름이었다. 오래된 소설의 귀족이나 기사, 적어도 그들이 아끼던 말에게나 붙을 법한 쓸데없이 고상한 울림이었고, 그것은 그의 삶이나 그 스스로에게는 불필요한 소음이었다. 그렇게 말하자 녀석은 산뜻하지만 무성의한 어조로 그럼 페리는 어떠냐 물었다. 아마 일곱살 때의 일이었다. 짧고 발음하기 편한데다 평범해서 제법 마음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구나 애칭이라던가, 너무도 당연하게 불려온 그로서는 생각도 못한 일이라 다소 신선한 감이 없잖았다. 서너번 정도 속으로 되뇌어본 그는 잠시 녀석을 올려보다 입술을 비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던지. 녀석은 이런 거에 뭐 그리 부끄러워하냐며 실실 웃었다. 안그래도 본래부터 실없는 놈이 동갑이면서 머리 두 개 정도 큰 재수없는 그 몸 어딘가에..
아이가 되짚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희뿌연 연기로 가득찬 방이었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나무판자를 덧댔는데, 그조차 부족하다는 듯 가시달린 철사로 칭칭 동여져 있었다. 그럼에도 얕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희미한 빛살이 허공을 떠돌았다. 아지랑이처럼 꾸물대는 무형의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로막힌 창 너머에서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속삭이며 웃음짓는 소리들은 이따금 볕을 휘저으며 유리창을 두들겼다. 지금의 아버지보다 더 젊고 수척한 인상의 남자는 선잠을 자다가도 퍼뜩 몸을 일으키며 그 무언가들을 쫓아내듯 수차례 발을 굴렀다. 방 한 켠에는 잘 마른 장작과 이름 모를 꽃들이 창가보다 높게 쌓여있었다. 다만 익숙한 향이었고, 어렴풋이 방 안을 메운 연기에서 맡았으리라 추측한다. 드물게 마르지 않은 그것들..
언제나 비가 내린 뒤의 밤이면 남자는 아이와 함께 호수로 향했다. 평소였다면 해가 진 뒤의 숲은 위험하다며 막아서던 그였으나 비가 땅과 하늘을 쓸어간 날만큼은 예외였다. 맑게 개인 밤하늘은 평소엔 작고 흐린 별도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이는 비가 그친 숲 속에서 축축해진 나무껍질의 향이나 무른 땅 위에 남은 여러 동물의 자귀, 크고 작은 물웅덩이, 풀섶 밖으로 고개를 내민 달팽이 등을 찾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 아버지와 함께 호숫가에 앉아 별자리를 찾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총총히 맺혀 반짝이는 별들을 이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이들을 싣고 머나 먼 항해를 떠났던 배, 뛰어난 음악가였으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 주인을 잃은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