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 있지 않은 문을 열기란 꽤나 어렵고 또 무서운 일일 것이다. 문 틈으로 스미는 불빛 위를 딛는 것조차 곤혹스럽다는 표정의 아이는 결국 서너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다소 오래된 양식의 파자마 자락이 유령처럼 흔들린다. 정교하게 짜맞춘 나무판자의 바닥이 아이의 발 아래에서 희미하게 삐걱거렸다. 복도에 늘어선 창문 너머에는 깊게 잠든 숲이 얕은 숨을 고를 뿐이다. 풀벌레, 부엉이 하나 우는 소리 없이 고요하다. 달마저 괴괴히 기울어가는 이 밤에 잠에 들지 못한 것은 아이와 노인 뿐이었다. 아이는 노인의 방에서 흘러나와 문턱 아래 고인 채 일렁이는 온기를 들여보다가 이내 그 앞에 웅크려 앉았다. 숨을 죽이니 문 너머에서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 같기도 하고 속삭임 같기도 한, 가볍지 않은..
그 날은 유독 비가 엄청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희뿌옇게 쏟아지는 통에, 채 돌아가지 못한 아이와 사내는 속이 빈 거목 아래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사실 이른 아침부터 단단히 퍼부을 조짐이 보이던 터였다. 사내는 제 어린 아들에게 해가 머리맡을 지나기 전에 돌아오라 일러두었지만 이제 막 내달리기에 익숙해진 아이는 한참 세상만물이 신기할 법한 때였다. 최대한 늦지 않게끔 밖을 나섰으나 아이를 찾았을 즈음엔 먹구름이 발꿈치 끝까지 몰려와 있었다. 점차 어둑해지는 데도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천둥이 우는 소리는 벌써 머리맡까지 와 있었으며, 숲이 온통 물기를 머금은 탓에 젖지 않은 발치마저 부드럽게 눅어가고 있었다. 사내의 옷자락을 움켜쥔 채 벙어리를 자처한 아이는 잔뜩 풀이 죽어 금방이라도..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렸다. 꽃 핀 가지마다가 무거워 고개 숙인 끄트머리가 창가를 두들겼으며, 맞닿자 열없이 흩어지고마는 연분홍들이란 금새 작별을 고하며 봄과 함께 넘실거렸다. 몰라보게 따스해진 햇살은 노란 셀로판지 빛이었다. 엷고, 보드랍고, 다정하며, 또한 무구하다. 눈을 감고 있노라면 그 안온한 무해함에 지나칠 정도로 느슨해지고 마는 것이다. 무심코 창문과 함께 방충망을 걷어내본다. 난간에 짧게 머문 봄비의 흔적과 꽃잎의 무늬를 대강 쓸어내며 그 위에 턱을 괴인다. 분분한 낙화—엉거주춤 숙여내며 떠올린 문구는 어느 시에서 왔을까, 아무래도 좋을 일에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문득 미처 손 끝으로 훔치지 못한 먼지들로 까매진 팔꿈치를 발견한다. 발치로 쏟아져들어온 꽃잎들을 눈치챈다. 지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