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렸다. 꽃 핀 가지마다가 무거워 고개 숙인 끄트머리가 창가를 두들겼으며, 맞닿자 열없이 흩어지고마는 연분홍들이란 금새 작별을 고하며 봄과 함께 넘실거렸다. 몰라보게 따스해진 햇살은 노란 셀로판지 빛이었다. 엷고, 보드랍고, 다정하며, 또한 무구하다. 눈을 감고 있노라면 그 안온한 무해함에 지나칠 정도로 느슨해지고 마는 것이다. 무심코 창문과 함께 방충망을 걷어내본다. 난간에 짧게 머문 봄비의 흔적과 꽃잎의 무늬를 대강 쓸어내며 그 위에 턱을 괴인다. 분분한 낙화—엉거주춤 숙여내며 떠올린 문구는 어느 시에서 왔을까, 아무래도 좋을 일에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문득 미처 손 끝으로 훔치지 못한 먼지들로 까매진 팔꿈치를 발견한다. 발치로 쏟아져들어온 꽃잎들을 눈치챈다. 지독히도 넓어진 집 안에 홀로 드리운 그림자와, 고요함에 덧그려지는 초침소리의 건조함을 실감한다. 남자는 담담히 그런 것들을 곁눈질하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창문은 여전히 열어둔 채였다. 날 것의 바람이 텅 빈 공간을 몇 차례 배회하곤 미련없이 뒤돌아 나갔지만 그것이 관계의 종말로 매듭지어지진 않을 테였다. 남자는 느슨해진 머리끈을 고쳐 묶고서 앞으로 제 것이 되지 못할 흔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이제야 겨우 새 것 티를 면한 모서리의 고무마감들을 하나하나 뜯어내는 일 뿐이라 제법 한가했다. 식탁과 의자, 협탁, 서랍 손잡이들과 1m 남짓한 모든 면들의….
…….
고작 그것 뿐이었음에, 제겐 지나간 시간들을 미화할 자격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johnparttimer - sci-fi piano
https://youtube.com/watch?v=6JQR90cj6Ow
'✎' 카테고리의 다른 글
0409, 23:13 - 23: 56 (0) | 2019.04.09 |
---|---|
0408, 23:00 - 23:30 (0) | 2019.04.08 |
0407, 23:00 - 23:30 (0) | 2019.04.07 |
0405, 23:00 - 23:30 (0) | 2019.04.05 |
0404, 23:30 - 00:23 (0) | 2019.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