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인 길을 벗어나 수풀 쪽으로 방향을 꺾은 아이의 걸음은 바람이었다. 여물기 시작한 어린 가지들을 헤치고 잎새를 가로지르며 내달린다. 흩어지는 케이프 자락이 작은 날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정말 한 마리의 새 같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그늘로 막힘없이 흐르며 너머의 빛으로 향한다. 노인은 그런 아이에 비해 한참을 뒤처져 있었지만, 신중하면서도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곧게 그 작은 등을 따랐다.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이었음에도 아이는 어느새 숲을 빠져나가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해를 등져 얼굴에 온통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으나, 아이는 점차 길어져 가는 여름볕보다 환하게 미소한다. 그것이 너무도 따스하고 선명해서 노인은 일순 눈이 부시다고 여겼다. 능선을 타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이봐, 나으리.” 이리 부르고나면 그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깊이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이마를 짚을 정도였던 지라 그때에 비하면 꽤나 익숙해진 듯했다. 부름에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경박하고 목적없는 부름에도 정직하게 눈을 맞춰온다.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그만큼 올곧은 사람이라고도. 뭐, 많이는 아니고 아주 약간은. 상대에게 충실하기 짝이 없는 시선과 막연히 마주한다. 지긋한 나이임에도 총기가 가시지 않은 푸른 눈을 본다. 지천에 널려 매일같이 마주하는 색이었으나 이를 타인에게서 보는 것은 간만이었다. 숲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까닭도 있지만 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린 탓이다. 물론 드러낼 생각도 없었다. 그랬었는데.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 편히 하게...
뭘 그리 빤히 보는 게요. 툭 쏘아 붙이는 듯한 소리에 노인은 뒤늦게 그와 눈을 맞췄다. 말투와 달리 숲을 닮은 녹빛의 눈은 항상처럼 담담하게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비록 그의 미간 사이에는 주름이 깊고 입술은 새처럼 비죽이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가 그렇게까지 불쾌해 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알았다. 벌써 마주한 지 보름에 가깝다. 이 낯선 자는 어김없이 달이 뜨기 전에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나선 한껏 못마땅한 얼굴로 노인이 갓 피워낸 모닥불을 삐딱하게 바라보다가 말없이 한숨을 내쉬곤 그 앞에 앉아 불을 쬐는 것이다. 달이 그들의 머리 위에 오를 때까지. 노인은 그를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닌지라 그가 나타나면 본래보다 세 배는 더 과묵해졌다. 그 또한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