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다지도 따스할까, 잠에 든 어린 것의 머리맡에 코를 대자 연한 햇볕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채 가시지 않은 젖 내음, 부드럽게 묻어나는 섬유 특유의 마른내와. 이런 정보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강렬하게 파고드는 일족의 체취. 눈 앞에 어룽지는 붉은 빛보다도 짙고 선명하게 비강을 타고 온 몸으로 번져 영혼에 와닿는다. 아직 숨기지 못하며 시시각각으로 한들이는 작은 귀와 꼬리를 눈에 담는다. 제 엄지도 다 쥐어내지 못할 작은 손이 허공을 움키며 맴맴 호를 그리는 것을 따른다. 잠결에 옹알이는 소리에 행여나 무슨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을지, 흐트러진 머리칼을 빗어내며 가만 귀기울인다. 엷게 젖은 숨이 살갗에 스미듯 흐른다. 한 손으로 다 가려지는 작은 가슴 아래에서 제 것보다 ..
누군가 이름을 불렀던 것 같은데. 사내는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았으나 그가 걸어온 길 위에는 응당 아무도 없었다. 걸음 소리도 없고 그림자조차 없다. 그의 존재마저 부정하듯이 미온의 볕만이 무겁게 가라앉은 길은 괴괴하다. 언제부터 걸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끝이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사내는 지친 발을 하염없이 옮기며 검은 해를 향해 걸어간다. 낮게 부유하며 야트막한 능선에 무거운 몸을 괴인 그것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였다. 이 길이 끝나면, 저 끝에 도달하면. 처음에는 헤아릴 수 없는 상념과 잔념들이 뒤엉켜 포화상태였지만 지금은 그 집념만이 오롯하게 남았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 하나 뿐이다. 그러다 제 자신마저 잊어 정말로 길 위에 아무도 남지 않는 순간이 오..
말하고자 한다면 입에 올릴 수 있었던 문장은 많았으리라. 오늘 있었던 일, 요즘 사는 세상, 언젠가에 대한 근황, 하다못해 날씨와 흘려들은 텔레비전 너머의 소음들, 중얼임, 골목 언저리에서 놓치고만 길고양이의 긴 꼬리라거나, 바람에 흔들리던 나뭇잎들, 철지난 가요와 어디가나 똑같은 음악들, 웬일로 부대끼지 않았던 출근 버스, 운 좋게 오븐이 열리는 시간에 지나갔던 빵집 옆길, 가로수 아래에서 주운 100원짜리 동전과 같은, 그런 것들. 그래, 당신과는 상관없는 것들. 흔해 빠진 고백을 주워 삼키지 못해 흔해 빠진 이야기들을 주절거렸다. 소리들은 모두 마주앉은 상대에게 향했으나 서로가 여백이 되는 대화들은 그저 무난하고 평행하게 이어진다. 대화의 연장선, 당신과 나는 이렇게 딱 커피 두 잔이 놓일 정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