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이는 초침이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을 밝히기 위한 밑재료는 모두 준비되어 있다. 거미줄처럼 곳곳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흔적들을 끌어내 짜맞추기만 하면 완성되는 맥락이 곧 진실이다. 숨을 가다듬는 사람, 손톱을 물어 뜯는 사람, 발을 구르는 사람, 이죽이며 흥얼이는 사람, 눈물이 멈추지 않는 사람, 침묵하며 방관하는 사람. 각자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 어긋난 말들은 서로의 모순을 꼬집는다. 의심과 흥분은 훌륭한 아군이다. 훼손된 단서는 그마저도 위조되었지만 그 흔적조차 실마리로 빛나며 가려진 대상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주어진 것들은 사리를 밝히는 데에 충분할 정도였다. 오히려 과도함을 경계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모자람없이 풍족한 지혜, 자만으로의 지름길. 어디..
발판을 잃은 자의 말로는 추락 뿐이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쓰렸다. 휘몰아치며 유약하기 그지 없는 몸에 발톱을 세운다. 얼핏 종결 외엔 남지 않은 이를 힐난하는 것 같다. 차갑게 얼어붙어가는 뺨을 억지로 움직여 입꼬리를 끌어낸다. 실소, 또는 자조. 비명과 같은 울림이 귓가에 맴논다. 결국 울음이 섞이자 점차로 어두워지던 하늘에 뇌운이 번쩍이기 시작한다. 단 하나를 위한 슬픔은 메마른 대지에 단비처럼 스며 만인의 기쁨이 될 것이다. 단 하나를 쥐기 위해 속도를 더하기 시작한 돌풍은 이 땅의 부정한 것들과 함께 만인의 고통을 쓸어낼 것이다. 짙게 깔리기 시작한 어둠 너머로 희미하게 동이 튼다. 그럼에도 선명하게 눈가에 닿는 빛살이 시려 감아버린다. 생각보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다..
상실을 추모하며 고개 숙인 이는 완연한 겨울이다. 제 어미와는 다른 어떤 무채색. 마마는 손 대면 따스하게 녹아 스미는 눈 같은 사람이었지만, 당신은 작은 온정 하나에도 위태하게 바스라지면서 굳건한 체를 한다. 메마르고 창백한 회벽의 색. 알고 있다. 당신의 깊숙한 곳에서 축이 되었던 자는 아주 오래 전에 부숴졌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당신은 아무렇지 않으려 들었고 친족들은 그렇기에 당신을 방관했다. 반려를 잃은 자의 애상이란 무릇 낙인과 같은 것이었으므로. 당신 같이 무른 이에겐 그가 더없는 구원이자 낙원에 가까웠으리라. 나이를 탓하기엔 부쩍 왜소해 보이는 당신의 등을 여상한 낯으로 쓸어낸다. 매년 이맘때면 선명해지는 그의 앳된 얼굴, 이름자, 그리고 그를 회고하며 떨리는 손에 얼굴을 묻는 당신. 가엾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