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침소리. 균일하면서도 끔찍하게 철판을 긁어낸다, 그런 착각을 현실처럼 받아들인다. 후텁한 열기에 눌러 붙은 머리 가죽은 아직 환기 되지 못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팽창한 뇌를 옥죈다. 아득한 와중에도 선명해가는 이명을 좇는 시선은 부산스럽다. 사실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까지 모니터를 들여 보느라 뻐근할 지경으로 굳어버린 탓에 같은 자리에서 헛돌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이에도 점차 깨여가는 몸뚱이에 피가 돌자 잠시간 현기증이 겹친다. 두개골과 두피의 어느 얇은 틈 사이를 얇은 와이어로 한 땀 한 땀 꿰어낸 너른 망으로 짓눌리는 망상 따위를 부러 한다. 중첩된 통증에서 한 꺼풀이나마 멀어지기 위해서는 무신경이 필수였다. 흑백이 점멸하는 무형의 압박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이다 겨우내 몸을 웅크리고, 저만치 ..
노인이 선잠에서 깨어난 것은 탁자 위에 놓아둔 양초가 절반도 채 타지 않은 무렵이었다. 때 아닌 폭풍우로 창틀과 문간이며 지붕까지 좀처럼 진정될 기미 없이 퍽 요란하게 들썩인다. 빛바랜 걸쇠와 경첩들은 삐걱이고 유리창은 덜덜댄다. 쉼 없이 퍼부어지는 통에 바깥은 바로 너머의 것도 한 덩어리의 먹구름으로 뭉개버린 채, 간간히 내리 꽂히는 번갯불에나 겨우 희게 질릴 따름이었다. 빗소리 사이로 무언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물웅덩이 번지는 소리가 이지러진다. 지붕 어딘가가 날아다니던 잔해에 벗겨져 비가 새는 듯했다. 노인은 낮게 한숨을 삼키며 마른 낯을 쓸어냈다. 분명 얼마 전에 단단히 보수를 해두었음에도 주인과 다를 바 없이 해묵은 몸뚱이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이런 걸로 되겠어? 노인이 이곳에 ..
깨지 않는 꿈은 없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얼어붙어 창백하게 어그러져가는 창유리 위로 서리의 결만 선명해간다. 유빙들이 치받으며 내지르는 기성의 기록이다. 천지를 뒤덮은 잿빛은 가실 기미가 없다. 오늘도 두텁게 깔린 눈구름 아래 수면은 액사한다. 푸른빛조차 잃은 파도는 투명하게 그늘을 내비친다. 거뭇하게 잠긴 파도 위로 흰 거품이 괴괴하게 흐른다. 강설하지 않는 정적의 정경은 진즉부터 색을 잃었다. 불온을 쑤군거리던 외인들조차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호흡을 감추고 불씨를 꺼트린 채 마른 나무토막 밑으로 몸을 숨겼다. 동토의 족하에는 외경하는 시선들이 겨울을 버티려 엉겨든 벌레마냥 바글거렸다. 이내 그마저도 잦아든 후에는. 벌어진 아가리 깊은 곳에서 들척지근한 군내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