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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선잠에서 깨어난 것은 탁자 위에 놓아둔 양초가 절반도 채 타지 않은 무렵이었다. 때 아닌 폭풍우로 창틀과 문간이며 지붕까지 좀처럼 진정될 기미 없이 퍽 요란하게 들썩인다. 빛바랜 걸쇠와 경첩들은 삐걱이고 유리창은 덜덜댄다. 쉼 없이 퍼부어지는 통에 바깥은 바로 너머의 것도 한 덩어리의 먹구름으로 뭉개버린 채, 간간히 내리 꽂히는 번갯불에나 겨우 희게 질릴 따름이었다. 빗소리 사이로 무언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물웅덩이 번지는 소리가 이지러진다. 지붕 어딘가가 날아다니던 잔해에 벗겨져 비가 새는 듯했다. 노인은 낮게 한숨을 삼키며 마른 낯을 쓸어냈다. 분명 얼마 전에 단단히 보수를 해두었음에도 주인과 다를 바 없이 해묵은 몸뚱이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이런 걸로 되겠어?
노인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한 날 오랜 친우가 처음 던진 물음이었다. 염려어린 재확인이라기엔 다소 못마땅함이 깃든 어떤 질책이었다. 바닷바람에 다 삭아서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잖아. 차라리 다시 짓는 쪽이 더 빠르겠군. 뭐, 여관? 그렇게 말하는 녀석이 이런 외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 자백하는 게 어때? 퉁명스레 쏘아내는 목소리는 노인을 올려보는 시퍼런 시선만큼이나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으나 노인은 그저 웃어보였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때? 그래도 자네는 와줄 거잖나, 바쁜 시간 쪼개가면서. 그렇지 않아? 짐짓 엄한 척―어쩌면 아주 조금 제게 진심으로 화가 났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완고히 구는 그에게 저란 존재가 기실 꽤 큰 위안이 되고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말문이 막혀 앙다문 그의 뺨이 벌겋게 물드는 모습이 퍽 사랑스럽다는 생각 따윌 한다. 그런 스스로가 약았음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용서하리란 확신 또한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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