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0118, 23:25 - 23:55

페페이 2021. 1. 18. 23:55

 

 

  안식이 깃들었어야 마땅했으나 불길하기 그지 없던 일요일 아침.

  지평의 끝이 곧 울타리의 끝이었던 드넓은 목초밭은 뿌리까지 메마르고 무수한 종의 금수가 어울려 살아가던 숲은 재가 되어 부나꼈다. 거울과 같아 하늘과 맞닿았던 호수는 거멓게 뒤덮여 황의 내음이 맴돌았다. 앙상한 백골들만이 어지럽게 헤집어진 대지를 끌어안는다. 암운으로 뜻을 밝힌 천명이란 일말의 자비 없이 날 선 뇌거를 동반했다. 망령은 어느새 발꿈치 뒤에 서 있었다. 노인의 질긴 숨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저 멀리 새로운 죄인을 낙인찍기 위해 아가리를 벌려 고하는 구폐를 듣는다. 검은 것이 몰려온다. 그것은 죽음이자 저주이며 약탈을 이름 삼는다. 표적은 명백하다. 업보는 뒤틀린다. 사지를 덜덜이며 욕지기가 치미는 입을 열 손가락으로 틀어 막고 뒤늦은 용서를 구하기엔 그가 곧 살아있는 죄악이자 재앙이 될 터였다. 그 해의 가을을 붉게 물들인 자는 광기의 화신을 자처한다. 전마를 몰아 도래하는 절명에는 눈이 없는 대신 만물을 불사지르는 빛의 창을 가졌나니. 기어코 금기를 토막내 집어삼킨 마녀의 백회를 꿰뚫어 머무른 일대를 무로 되돌리니 두려움에 숨은 달이 파르스름하게 차올라 다시 기울 때까지 그 업화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 경고가 단죄로 형태를 바꾸매 미물 하나 살아남지 못했으나.

  생사를 박탈 당한 육인은 잿더미 속에서 검은 몸을 일으켜 끝없이 방황한다. 검은 것이 배회한다. 그것은 죽음이자 저주이며 약탈을 이름 삼는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608, 23:00 - 24:10  (0) 2021.02.02
0119, 23:45 - 00:15  (0) 2021.01.20
0117, 22:28 - 22:58  (0) 2021.01.17
1013, 23:00 - 23:30  (0) 2019.10.13
1012, 23:00 - 23:30  (0) 2019.10.12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