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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9, 23:00 - 24:00

페페이 2021. 2. 2. 00:55

 

 

  초침소리. 균일하면서도 끔찍하게 철판을 긁어낸다, 그런 착각을 현실처럼 받아들인다. 후텁한 열기에 눌러 붙은 머리 가죽은 아직 환기 되지 못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팽창한 뇌를 옥죈다. 아득한 와중에도 선명해가는 이명을 좇는 시선은 부산스럽다. 사실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까지 모니터를 들여 보느라 뻐근할 지경으로 굳어버린 탓에 같은 자리에서 헛돌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이에도 점차 깨여가는 몸뚱이에 피가 돌자 잠시간 현기증이 겹친다. 두개골과 두피의 어느 얇은 틈 사이를 얇은 와이어로 한 땀 한 땀 꿰어낸 너른 망으로 짓눌리는 망상 따위를 부러 한다. 중첩된 통증에서 한 꺼풀이나마 멀어지기 위해서는 무신경이 필수였다. 흑백이 점멸하는 무형의 압박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이다 겨우내 몸을 웅크리고, 저만치 밀려나 있던 잡음들이 일상을 빙자하며 몰려드는 것을 삼켜낸다. 낮은 소리로 웅얼이는 벽 너머의 냉장고 냉각음, 간밤에 끄는 것을 잊어버린 라디오의 새된 채널 이탈음, 창문을 쪼아대는 어떤 잡새들, 그리고 낡아빠진 소파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침실로 향하는, 아, 우리 귀염둥이 로렌스. 오늘도 네가 먼저 일어났구나. 땀에 젖다 못해 떡이 된 머리카락이 산발인데도 올해를 맞아 10살이 된 이 의젓한 고양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되려 제 새끼라도 돌보듯 검은 가닥 가닥들이 들러붙은 눅진한 뺨에 코를 부비다 살뜰히 혀를 내어 곁을 핥는 것이다. 녀석과 체온이 맞닿은 자리가 작게 진동한다. 오래되고 상냥한 녀석의 몸 속 어딘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 애정이란 언제나 자동차 엔진소리가 났다.

 

  끝날 줄 모르는 매일은 로렌스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새로 채워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어떤 날은 사료였고, 또 어떤 날은 캔이었으며, 다른 어떤 날은 살을 발라 데친 닭고기이거나 절이지 않은 생선이었다. 물론 바깥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후자처럼 싱싱한 밥은 사실 거의 드문 일이었다. 창밖은 사시사철 흐렸다. 차라리 비나 눈이 내릴 징조라면 그나마 나았다. 회반죽 색으로 칙칙하게 죽어버린 하늘에서 내리는 건 곰팡이 같은 희끄무레한 포자였고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의 정체는 포자들의 군집이었다.

 

  5년 전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내리기 시작한 이 재앙이란 공기 중의 수분을 빨아들이며 증식했다. 액상의 물에는 쉽게 분해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디까지나 분해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화하자 이전에 비할 바 없이 빠르게 그 수를 불려나갔다. 이윽고 세상은 잿빛으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어딘가가 마르는 동안 어딘가는 젖고 있는 법이었으므로 세상 자체는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생명체에 기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살아있는 것들은 호흡을 했다. 특히 호흡기관을 갖고 있는 존재들은 코 안쪽 점막부터 조금씩, 조금씩, 침식당하다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멸망까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인간은.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중 가장 수가 많고 역경에 굴하지 않으며 끝까지 반항하는 종자는 인간 밖에 없지. 다만 해를 거듭하며 몇 가지 약물과 몇 가지 돌연변이를 거친 끝에 포자는 시체를 조종하는 힘을 얻었다. 학회는 이런 시체들을 버섯에 비유하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과적으론 불태우는 방법 외엔 대책이 없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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