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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하건대, 아마 말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발톱으로 움켜내듯 성기지만 날카로이 내뱉어지던 새된 숨소리를 기억한다. 폐부 깊이 들이켜진 공기가 내부 발화기관을 거치며 달구어지다 못해 낮게 지글거리다 송곳니 틈으로 번져 흐르던 아지랑이를 기억한다. 더없이 포악하지만 동시에 당당하기 짝이 없게 아가리를 활짝 열어젖히며 드러난 날선 치열과 그 안쪽, 어두운 목구멍보다 그 깊숙한 어딘가에서 타닥타닥 튀어 오르던 불티를 기억한다. 어느 지방의 설화에서는 그들이 죽은 자리에는 산이 생긴다더니만, 실제로 이리 마주하자 몇 겹의 고개들을 겹쳐내고도 모자랄 만치 거대한 몸뚱이에서 울려오는 모든 감각들이 재앙으로 살아 숨 쉬던 그 면면의 전부를 기억한다. 그래, 우리의 첫 대화는 생존을 앞세운 위협과 경계였으며 추격과 도주의 연속이었다. 일말의 온정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본능적 행위의 연속. 그렇기에 말로는 차마 헤아릴 수 없는 각자의 존재를 서로로 하여금 증명해내는 것이리라.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 하나, 긴장된 근육 한 가닥, 밭은 호흡 한 번, 살기 위해 죽어라 내달리던 순간순간이 전부 너를 향해 있었으므로.
물론 피식의 입장에서 늘어놓을 만한 논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마주한 날에 대해 얘기하고 있노라면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었다. 그리고 곧 제가 뱉어낸 미적지근한 수증기가 고글에 들러붙어 뿌옇게 흐려진 유리알을 보고 키득였다. 검은 빛으로 느른하게 풀려있던 동공이 순식간에 가늘어지며 갈빗대와 날개 죽지를 들썩이는 모양새가 덩치에 비해 퍽 점잖았다.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태생적인 파괴력을 단 한 명의 인간을 위해 접어낸 그를 양날의 검처럼 여겼다만 당사자에겐 그저 따뜻하고 거대하며 날개가 달린 파충류 고양이에 지나지 않았다. 덧붙여 이런 생각을 들키면 조금 성가실 지도 모르는, 그러나 어쩌면 오만할 정도로 굽힐 줄 모르는 자긍심과 어쩌면 뻔뻔할 정도로 호쾌한 자부심이 눈부신 나의 벗. 넘치는 것은 모자라니만 못하다 하나 너는 딱 그 정도가 좋았다. 네게 비하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을 나를 호적수로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나아갈 길과 머무를 곁을 내어준 나의 반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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